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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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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꾼 꿈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꿈이었다.
꿈 속에서 나는 나이를 먹었고, 직장을 얻었고, 인생의 동반자이자 내 가장 친한 친구 대런을 만났고, 아이들을 낳았고, 내 아이들이 성인으로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결국에는 은퇴하여 노후를 보냈고, 내 사랑하는 남편이 암으로 목숨을 잃을 때 그 옆에 있었고, 마침내 나 자신도 내 차례만을 기다리며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쌓여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밝은 녹색의 심전도계가 수평선을 그리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이 모든것이 고작 몇 분 정도 잠든 사이에 일어난 것만 같았다.
나는 손을 문질러 입에서 흘러나온 침 자국을 닦았다. 팔을 베고 잔 것인지 한쪽 어깨가 뻐근했다. 나는 책상머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의 교실 안이었다. 방금 막 깎아낸 연필의 나무 냄새, 구겨진 채로 쓰레기통에 던져진 종이의 냄새. 이런 것들이 나의 감각들을 천천히 마저 깨우고 있었다.
현실적인 꿈이었다. 아니, 어쩌면 너무 현실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내가 낳은 아이들의 얼굴이, 사랑하는 그이의 목소리가, 그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마치 꿈 속에서 있었던 일이 진짜 내가 살아온 삶이었고, 지금 이 교실이 꿈인 것만 같았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꾼다는 그런 꿈.
만일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 그 정도라면 내가 살아온 인생은 충분히 풍족한 삶이 아니었을까.
나는 팔을 크게 뻗어 기지개를 폈다. 턱이 빠지도록 하품을 소리내어 뱉었다. 그 순간 내 눈이 한 쌍의 안경 낀 눈과 마주쳤다.
"아, 바넷 선생님, 죄송해요. 계신 줄 몰랐— 깜빡 잠들었어요—" 나는 말을 더듬으면서까지 핑계를 찾으려 했다. 그렇지만 교단 뒤의 사람은 그저 부드럽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내가 다녔던— 아니, 다니는 중학교의 수학 선생님인 바넷 선생님. 곱슬거리는 백발과 은테 안경, 주름진 얼굴까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인자한 동네 아주머니 같은 느낌이었다. 수학은 여전히 싫었지만.
"괜찮아요, 피곤할 테니.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답니다.” 바넷 선생님은 과연 바넷 선생님답게 나를 위로하듯 말했다. "먼 길을 온 참이니까요.”
"먼 길이요.”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먼 길이라니. 수업 중에 깜빡 잠든 건줄 알았는데요.”
"수업이라, 수업이라고 볼 수도 있겠군요. 흐음,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까…” 바넷 선생님은 곰곰히 생각이라도 하시는 듯 습관적으로 오른손 검지를 입에 가져다댔다. 잠시간의 정적이 도는 동안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선생님께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요, 여기는 죽은 자들이 오는 곳이랍니다.”
"죽은 자요. 잠깐만요, 지금 죽은 자라고 하셨어요?”
"그렇답니다. 죽은 자요.” 바넷 선생님이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여기가 사후세계라뇨. 여긴 제 교실이고, 이건 제 책상인데요."
"오. 아뇨, 아뇨. 사후세계는 아니랍니다. 여긴 임시로 잠시동안 머무는 곳이니까요.”
"무슨 말씀인지,” 머리가 핑 돌았다. 바넷 선생님은 이런 걸로 농담을 하실 분은 아니였다. 그것도 저런 인자한 표정으로. 화학 선생님인 스테파노 선생님이면 모를까. 나는 다시 한번 더 되물었다.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바넷 선생님은 그렇게 나를 다독이고는 이어나갔다. "죽음이란 것은 신비한 것이랍니다. 지금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렇지만 죽음은 살아있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남기고 와야만 했듯이 말이에요.”
"…꿈이 아니었다는 거네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차분한 어조로 말이 튀어나왔다. 마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 순간 나는 선생님의 안경에 비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세상이 어색한, 사춘기에 막 접어든 갈색 머리를 한 소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오며 바넷 선생님보다도 더 깊은 주름이 패인 얼굴을 한 호호 할머니. 두 명의 내가 잠깐이지만 겹쳐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수 년, 수십 년동안 잊고 살았던, 하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었던 사람의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런, 그러면 대런은요? 대런도 여기 있나요?”
"미안하게 됐지만, 남편은 여기 없답니다. 여기는 잠시동안 머무는 곳이니까요.”
"그럼, 여기 다음 곳으로 가면 대런을 볼 수 있나요? 천국이나 지옥 같은 곳으로 가게 되는 건가요?” 그리고 나는 어쩌면 제일 중요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를 질문을 덧붙였다. "선생님은… 바넷 선생님이 아닌 건가요? 누구시죠? 여긴 어디고요?”
바넷 선생님의 모습을 한 사람은 다시 한번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서는 바넷 선생님의 목소리로 내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래요. 여기는 시험을 치는 곳이랍니다. 모든 생물들은 죽으면 시험을 받게 되지요. 그 시험의 결과에 따라 다음 생이 정해지게 된답니다. 곤충이나 식물로 태어나게 될 지, 개나 고양이같은 동물로 태어나게 될 지, 아니면 사람으로 태어나게 될 지.”
"시험이라면, 재판 같은 건가요? 아니면 저울 위에 올려진다던가.”
"오, 아뇨. 그런 종류의 시험이 아니에요. 말 그대로 시험을 칠 예정이랍니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던 걸까, 바넷 선생님은 교탁 위에 올려져 있던 갈색 종이 봉투를 집어들어 내게 보여주었다. 갑작스러워서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학교 교실인 건가요. 그래서 선생님의 모습을 하고 계신 거고요.”
"그런 거였나요? 저 자신도 슬슬 궁금해지던 참이라.”
"그럼, 그렇다면 대런은 이미…?”
바넷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런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나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미안하지만 거기까지는 말해줄 수 없답니다. 이해하시겠지요. 다른 학생들의 성적을 알려주는 것은 올바른 선생님의 자세가 아니니까요.”
"그러면, 선생님은…?”
"나는 여기서 죽은 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지요. 보시다시피.”
"…신, 같은 건가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신이셔서 그런 건지, 신인데도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저희 선생님처럼 말씀하시네요.”
"결국 모든 것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린 것이니까요.” 그렇게 말하고는 선생님은— 신은— 교단 뒤에 선 사람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심하게 만드는 미소를.
그 순간 교시의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소리에 깜짝 놀랐다.
"어이쿠, 시간이 되었군요. 저도 이렇게 담소를 나누고 싶지만 시간이 무한정 많은 건 아니라서 말이죠.” 바넷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방금 전의 종이 봉투를 집어들어 내 앞까지 다가왔다. 갓 깎은 연필,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지우개, 그리고 왼쪽 위를 중심으로 가지런하게 제본된 시험지 뭉치. 선생님은 종이 봉투의 내용물을 꺼내 가지런히 내 책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문제를 시간은 얼마동안이나 주어지나요? 어려운가요?”
"시간 내에 다 풀 수 있을 만큼은 된답니다. 부담 갖지 말고 아는 대로만 적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에요.” 선생님은 덧붙였다. "행운을 빌게요.”
바넷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교탁 뒤에 놓인 의자로 가 자리에 앉으셨다.
나는 아직 반쯤 얼떨떨한 채로 책상 위를 응시했다. 시험이라니. 마지막으로 이렇게 앉아 시험을 본 것도 수십 년은 된 것만 같았다. 아니, 충분히 되고도 남았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시험에는 자신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살면서 보았던 어느 시험보다도 중요한 시험이 아닌가. 말 그대로 인생을— 아니, 인생이 될 지도 모르는 다음 생을 결정하는 시험이라니.
나는 시험지의 첫 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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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교실 안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연필심이 종이 위에서 미끄러지는 소리, 창문 바깥에서 이따금씩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아직까지도 긴장 상태인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전부였다.
나는 시험지에 쓰여진 글자 하나하나에 집중을 기했다. 한 문제, 한 문제에서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문제를 정독해서 풀었다. 어떤 문제는 번호를 선택하는 문제였고, 어떤 문제는 글로 답을 써내려가는 문제였다. 어떤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었고, 어떤 문제는 한참을 고민한 후에야 답을 적어낼 수 있었다. 세어 보지도 않았고, 문제 번호가 적혀져 있지 않았기에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수십 문제는 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기적처럼 나는 단 한 문제도 빼먹지 않고 답을 적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의 답을 적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내가 적은 답을 검토하기를 마친 바로 그 순간, 그제서야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소리가 교실 안에 울릴 정도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튀어나갈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손에 쥔 연필을 교실 바닥에 내던질뻔 하다시피 했다.
그렇지만 정말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시간 내에 모든 문제를 다 풀 수 있었다.
"자, 다 풀으셨나요?” 바넷 선생님이 어느새 내 앞까지 와 있었다. 내 입에서 나온 것은 진이 빠진 목소리로 간신히 말한 "가까스로지만요.” 가 전부였다.
"잘 했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시험지를 집어드셨다. "자, 그럼 이제 채점을 하도록 할게요.”
"어, 지금 바로 하시는 건가요.”
"그럼요. 얼마 안 걸린답니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이렇게 붙잡고 있는 것도 실례니까요.”
선생님은 내가 적어낸 시험지를 든 채로 교탁 뒤에 서셨다. 그러고는 콧노래까지 부르시면서 빨간색 색연필을 가지고 하나하나 문제를 채점하기 시작했다. 어떤 문제에는 동그라미, 어떤 문제에는 가위표. 아직까지는 가위표가 나온 문제는 두 개밖에 안 되었다. 이 기세로라면 우수한 성적으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를 풀 때보다 더 심장이 뛰었다.
그렇지만 문제가 뒤로 갈 수록 선생님이 채점하는 속도도 느려졌다. 특히 서술형 문제에서는 더했는데, 선생님은 거의 내가 문제를 풀면서 읽었던 것처럼 내가 쓴 답안을 정독하는 것 같았다. 가끔씩은 색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면서까지. 혹여나 내가 쓴 답안 중에 잘못 쓴 것이 있을까, 아니면 하다못해 알아보지 못할 글자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선생님이 나를 불러 물어보기라도 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채점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동그라미나 가위표로— 지금까지는 동그라미가 훨씬 많았지만— 정오를 구분했다면, 지금은 내가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인지 문양인지 모를 것으로 표시를 하고 계셨다. 나는 내 인생이 현미경 밑에서 들여다봐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내 인생을 담아낸다는 마음으로 답안지를 작성해냈으니까.
한 장, 한 장 시험지의 채점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뒷표지가 덮어졌을 때에는 이미 교실의 창문을 통해 그림자가 길게 져 있었다. (정말로 시간이 흘러간 것인지, 아니면 시간이 흘러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선생님께서 고개를 드셨을 때 나는 그 표정을 보고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선생님의— 선생님의 모습을 한 사람의— 얼굴에는 항상 짓고 계셨던 인자한 미소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진중한 표정만이 남아 있었다. 시험에 떨어진 것일까. 다음 생은 바퀴벌레 같은 것으로 태어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다음 생을 살 자격도 없는 실격자인 것일까.
"미안해요. 조금 오래 걸렸지요.” 나의 마음을 읽어보기라도 한 듯 선생님께서는 다시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조금, 예상하지 못했던 답을 적어준 게 있어서 말이지요. 그래도 채점은 다 되었답니다.”
"실격, 인 건가요.”
"정말 미안하지만, 아직은 말해줄 수가 없어요. 보통은 바로 알려주지만, 이런 건 좀 특별한 경우라서…” 선생님은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회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겠네요.”
"회의라고요.”
"저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하지만, 신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말했듯이, 아무리 신이라고 하더라도 혼자서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오히려 그 정반대랍니다.”
"신이 더 있는 건가요.”
"회의를 한다면, 아무래도 혼자서는 안 되겠죠.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바넷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교실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잠깐만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선생님이 나가기 직전 입을 열었다. 후회감이 몰려왔지만 이미 입을 연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만일, 만에 하나 여기서 나가고 싶다면요?”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바넷 선생님이 묘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리고, 어차피 딱히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미소를 지어보이고서 교실 밖으로 사라졌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생전에 공부를 그렇게 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제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당연히 시험을 못 봐서 그 결과로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적어도 이 정도로는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신들 사이에 회의가 필요한 정도라면 정말로 낙제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다음 생을 살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어느 자애로운 신의 의견으로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재시험을 본다면 적어도 벌레 정도로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교실 안에는 왁스 먹인 나무 바닥이 매끄럽게 깔려 있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요즘은, 적어도 내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교정에 들어가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나무 바닥은 보기 어려웠다. 창문 바깥은 잔디밭으로, 그리고 잔디밭은 곧 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숲의 어딘가에서는 때때로 종류를 알 수 없는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만 빽뺵한 숲의 나뭇가지 사이에서 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숲 위로 깔린 하늘은 어느새 노을의 빛을 보이고 있었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어쩌면, 내가 사정사정한다면 다시 태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여기에 남게 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것도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잡부로서라도 괜찮을 것이다.
오 분을 기다리고 십 분을 기다려도 선생님이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교실 뒤편의 시계는 고장이라도 난 것인지 이상한 시간에 멈춘 채로 돌아가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 시간인지, 하루인지, 한 달이 지났는지 일 년이 지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마침내 인내심이 바닥난 나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교실 문을 사알짝 열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교실 밖을 보았다. 평범한 복도가 곧게 뻗어 있었다. 그렇지만 정말 나갈 엄두는 전혀 나지 않았다. 선생님이 일러둔 것도 있었지만, 나의 직감이 나로 하여금 나가지 못하게 말리고 있었다. 교실 문턱에서 그렇게 어정쩡하게 서 있기를 몇 분이었을까, 결국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아서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다행히도 내가 자리에 가서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복도에 인기척이 돌았다. 한순간 긴장되었지만 역시 직감으로 바넷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교실 문이 열리고 역시 직감대로 바넷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래요.” 선생님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다시 한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말했다시피 흔치 않은 경우다 보니까요. 한 이천 년에 한 번 정도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고 할까요.”
"낙제인 거죠? 괜찮아요. 그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요. 그러면,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면, 여기에 있으면 안 될까요? 잡일이라도 괜찮으니까—" 나는 한결 상기된 목소리로 내뱉었다. 마음이 급한 만큼 빠른 속도로 말이 나왔지만 그나마도 다 끝맺지 못하고 목이 메어 버렸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오, 아니랍니다.” 바넷 선생님이 나를 다독였다. "오히려 그 정 반대에요. 정말 우수한 성적을 받았는걸요.”
"예?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말했다시피 다음 생에 무엇으로 태어나게 될 지는 시험 결과를 통해 정하도록 되어 있어요. 보통은 우수한 성적을 받으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죠. 그렇지만 이렇게나 높은 성적을 받는 경우는 정말 드물답니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저희들 사이에서 많은 논의를 거친 결과, 선례를 따라 채용 제의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답니다.”
"채용 제의라니, 그렇다면—"
"그래요. 새로운 신으로서이지요.” 바넷 선생님은 왠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안 좋은 건가요?”
"신이 되기 위해서는,” 바넷 선생님이 대답했다. "마지막 과정이 하나 남아 있어요.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의 예언자로서 다시 태어나야만 해요. 그래야 비로소 종교의 초석이 다져지고, 하나의 신이 탄생하는 것이랍니다.
"쉬운 삶이 되지는 않을 거에요. 예언자들의 삶은 항상 누구보다도 고되고 힘들죠. 이단으로 몰리기도 할 거고, 순교로 끝을 맺게 될 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 삶을 끝맺은 후에 다시 한번 여기로 와서 신이 되기에 적합한지 보게 될 거랍니다.
"미안해요. 너무도 갑작스럽게 이렇게 결정이 되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힘든 앞길을 걷도록 부탁해서.”
"그러니까,”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걸로 필기 평가는 끝이고, 실기 평가를 보겠다는 거네요.”
"그래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바넷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한번 더 빙그레 미소지었다.
"잘 할 수 있을 거에요. 다음번에 다시 여기에서 만날 때까지.”
"이제 그럼, 저는 다시 태어나게 되는 건가요?”
"준비가 다 되었으면, 교실에서 나가서 중앙 현관을 통해 나가면 돼요. 어떻게 나가는지는 이미 알고 있을 거랍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 속이 왠지 모를 자신감으로 벅차올랐다. 나는 바넷 선생님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노을 진 교실의 풍경을 훑어보았다. 다음 번에 다시 돌아왔을 때 알아볼 수 있도록.
"고마워요. 여러 모로.”
"별 걸요. 제 일이랍니다.”
나는 교실 문을 열고 복도에 발을 내딛었다. 복도 안은 조용했다. 발 밑에서 조용히 나무 판자가 기분 좋은 끼익 소리를 내었다. 나는 그대로 곧장 계단을 타고 내려가 중앙 현관에 섰다. 유리로 된 중앙 현관문 너머로 노을로 가득찬 하늘이 불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담을 수 있는 만큼 가득 담았다. 이 고양감을 영혼에 새겨넣기 위해.
나는 마침내 학교 건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 교문을 향해 큰 걸음을 밟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