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실제로는 출판사 돌베개에서 출판한 박제가 지음, 안대회 엮고 옮김 "쉽게 읽는 북학의"를 인용, 생략, 다듬고 풀어 쓴 것입니다. 생략한 곳은 생략 표시를 했습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면 책을 사서 보시기 바랍니다 (종이책, 전자책). 연구를 한다면 완역 정본 북학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쉽게 읽는 북학의"는 완역 정본 북학의의 저자 본인이 직접 20종의 이본을 교감하여 만든 정본을 바탕으로 현대의 독자에 맞도록 순서를 바꾸고 해설을 붙이고 도판을 추가한 책입니다. 연구 목적이 아니라면 이쪽이 낫습니다. (가격도 더 쌉니다.)
글에서 병오년은 1786년입니다. 빅토리아 3의 시대적 배경은 1836년부터 1936년까지입니다.
(원 제목은 丙午正月二十二日 朝參時 典設署別提朴齊家所懷, "병오년 정월 22일 조참 때 전설서별제 박제가가 드린 소회"라는 뜻입니다.)
신은 이번 달 17일에 비변사에서 내려온 통지문을 엎드려 읽어 보았습니다. 위로는 정승 판서로부터 아래로는 대궐을 지키는 군사까지 포함하여 국사를 맡은 모든 신하들이 제각기 품고 있는 생각을 다 드러내어 과감히 글을 올리라는 지시였습니다. 그 통지문을 보고서 신은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조선이 국가를 창업하여 왕조를 이어 온 400년 동안 정치와 교화가 융성하고 빛나서 그 아름다운 치적을 하은주 삼대에 견줄 만합니다. 또 성상께서 나라를 다스린 지 이제 10년으로 그동안 많은 제도가 정비되었습니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성상께서는 성인으로 자처하지 않으십니다. 재앙이라도 만나면 더욱 근면하게 정사를 돌보시어 나무꾼 같은 비천한 자에게도 자문을 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은 미치광이 장님 같은 당돌한 짓도 피하지 않고 대략 한두 가지 말씀을 올리고자 합니다.
현재 국가의 큰 폐단은 한마디로 가난입니다. 그렇다면 이 가난을 어떻게 구제하겠습니까? 중국과 통상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이제 조정에서 사신 한 사람을 파견하여 중국에 이런 글을 보내십시오.
내가 가진 것을 다른 데로 옮겨서 없는 것을 얻고자 무역하는 것은 천하의 공통된 법입니다. 일본과 류큐, 베트남, 서양의 무리가 모두 푸젠, 저장, 자오저우, 광저우 등지에서 교역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뱃길을 통해 상인들이 통상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십시오.
저들은 아침에 요청하면 저녁에는 반드시 허가를 내줄 것입니다. 그러면 황당선을 꾀어 불러들여 안내자로 이용합니다. 황당선은 모두가 광녕의 각화도 백성으로 법을 어기고 몰래 바다로 나온 자들인데 항상 4월에 와서 해삼을 채취해 8월에 돌아갑니다. 저들의 행위를 금지시키지 못할 바에야 아예 교역 시장을 만들어 주고 후한 뇌물을 주어 친교를 맺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또 연해의 섬에 거주하는, 물에 익숙한 백성들을 모집하여 관원이 인솔하고 곡식과 돈을 소지하고 시장으로 갑니다. 등주와 내주에서 온 배들을 장연에 정박시키고, 금주, 복주, 해주, 개주 물건을 선천에서 교역하게 하고, 장강, 절강, 천주, 장주의 재화는 은진과 여산 사이 강경에 모여들게 하십시오.
그러면 영남의 면화와 호서의 모시, 서북 지역의 실과 삼베를 비단과 담요로 바꿀 수 있고, 대나무 화살, 닥종이, 족제비 꼬리 털로 만든 붓, 다시마, 전복 같은 산물은 금과 은, 물소 뿔, 병기, 약재 같은 쓸모 있는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또 배와 수레, 가옥, 집기 따위의 이로운 기계를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천하의 책과 그림을 국내로 들여오므로 조선 풍속에 얽매인 선비들의 편벽되고 꽉 막히고 고루하며 좁디 좁은 견해가 굳이 깨뜨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부서질 것입니다…
중국의 흠천감에서 천문력을 만드는 서양 사람들은 모두 기하학에 밝고 이용후생의 학문과 기술에 정통하다고 들었습니다. 국가에서 관상감 한 부서의 비용으로 그들을 초빙하여 관상감에 근무하게 하고, 나라의 우수한 인재를 그들에게 보내 천문과 그 운행, 농사 짓는 일과 누에 치는 일, 의약, 자연 재해, 기후의 이치, 그리고 벽돌을 만드는 방법, 가옥과 성곽, 교량을 짓는 방법, 구리와 옥을 캐는 방법, 유리를 굽는 방법, 화포를 설치하는 방법, 물을 대는 방법, 수레를 다니게 하고 배를 만드는 방법, 나무를 베고 바위를 나르는 방법, 무거운 것을 멀리 보내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나라를 다스리는데 알맞게 쓸 인재가 배출될 것입니다…
신의 판단으로는, 그들 무리 수십 명을 집 한 채에 거처하게 하면 분명히 난을 일으키지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결혼도 벼슬도 하지 않고, 금욕 생활을 하면서 먼 나라를 여행하여 포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저들 종교가 천당과 지옥을 독실하게 믿어 불교와 다름이 없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들이 소유한 후생에 필요한 도구는 불교에는 없는 것입니다. 저들이 소유한 도구에서 열 가지를 취하고 나머지 한 가지를 금지하는 것이 좋은 계책입니다. 다만 저들에 대한 대우가 적절하지 않으면 불러도 오지 않을까 염려될 뿐입니다.
놀고 먹는 자들은 나라의 큰 좀벌레입니다. 놀고 먹는 자가 날이 갈수록 불어나는 이유는 사대부가 날로 번성하는 데 있습니다… 그들을 처리할 방법이 따로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근거 없는 소문을 날조하는 무리가 사라지고 국가의 통치가 제대로 시행될 것입니다.
신은 수륙의 교통 요지에서 장사하고 무역하는 일을 사대부에게 허락하여 상인 명단에 올릴 것을 요청합니다. 밑천을 마련하여 빌려주기도 하고, 점포를 설치하여 장사하게 하며, 그중에서 인재를 발탁함으로써 권장합니다. 그들로 하여금 날마다 이익을 추구하게 하여 점차로 놀고 먹는 추세를 줄입니다. 생업을 즐기는 마음을 갖도록 유도하며, 그들이 가진 지나치게 강력한 권한을 축소시킵니다. 이것이 현재의 사태를 바꾸는 데 일조할 것입니다.
신이 들은 바로는,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기만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피폐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재가 아주 드문데도 인재를 양성할 방도를 강구하지 않고, 재물이 날이 갈수록 고갈되는데도 소통시킬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며, 세상이 말세로 가니 백성이 가난하다는 핑계를 대니 이것은 국가가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처리할 사무가 간소해집니다. 관직에 있을 때에는 하급 관료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국경 밖으로 사신을 갈 때에는 모든 것을 역관들에게 위임합니다. 좌우에서 자기를 옹위하게 하면서 체면을 허술하게 할 수 없다고 하니 이것은 사대부가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사서와 오경이라는 과거 시험의 숲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팔고문의 길에서 기운을 다 소진하고 나서는 천하의 책을 몽땅 묶어 볼만한 것이 없다고 말하니 이것은 글 짓는 자들이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자가 있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쭐대며 천하를 야만족이라 무시하며 자기야말로 예의를 지켜 중화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것은 우리 풍속이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사대부는 국가에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국법이 사대부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니 이것이 자기를 피폐케 하는 것이 아닙니까?
과거란 인재를 취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인재의 선택이 과거로 인해 망가지니 이것이 자기를 피폐케 하는 것이 아닙니까?
서원을 설립하여 선현의 제사를 받드는 것은 선비를 숭상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부역에서 도망하는 장정과 밀주를 빚는 자들이 숨어 지내는 소굴이 되고 있으니 이것이 자기를 피폐케 하는 것이 아닙니까?
국가가 위에서 말씀드린 네 가지 기만과 세 가지 폐단을 유형에 따라 분석하여 그 잘못된 관행을 척결하고 무지한 자들을 가르쳐 깨우치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절반은 성공한 셈입니다…
국가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근본을 맑게 하는 데 힘쓸 뿐 지엽적인 것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 결과 행한 일이 간단해도 거둔 성과는 거창합니다. 현재 국사를 논하는 사람들 중에서 사치가 날로 심해진다고 말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신의 관점으로는 그들은 근본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다른 나라는 정말 사치로 인해 망한다고 해야겠지만 우리나라는 반드시 검소함으로 인해 쇠퇴하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화려한 비단옷을 입지 않으므로 나라에는 비단을 짜는 베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옷 만드는 기능이 피폐해졌습니다. 노래하고 악기 연주하는 것을 숭상하지 않기 때문에 오음과 육율이 화음을 이루지 못합니다. 부셔져 물이 새는 배를 타고, 목욕을 시키지 않은 말을 타며, 이지러진 그릇에 밥을 담아 먹고, 진흙을 바른 방에 그대로 살기 때문에 장인과 목축과 도공의 기술이 끊어졌습니다.
더 나아가 농업은 황폐해져 농사짓는 방법이 형편없고, 상업을 박대하므로 상업 자체가 실종되었습니다. 사농공상 네 부류의 백성이 누구 할 것 없이 다 곤궁하게 살기 때문에 서로를 구제할 방도가 없습니다. 저 가난한 백성들은 아무리 날마다 채찍질을 해대며 사치하라고 몰아쳐도 아마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현재 나라의 의식을 거행하는 대궐의 큰 뜰에서 바닥에 거적때기를 깔고 있고, 동쪽에 있는 창덕궁과 서쪽에 있는 경희궁의 대궐에서 궁문을 지키는 수비병은 무명옷을 입고 새끼줄 허리띠를 띠고서 서 있습니다. 신은 정말 그런 꼴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런 꼴은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여염의 백성들이 높여 세운 대문이나 부수고, 시장에서 가죽신과 적삼을 착용한 백성이나 잡으려 하고, 말 키우는 병사가 귀덮개를 하는 일이나 걱정하고 있습니다. 어찌 지엽말단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
지금 신이 말씀드린 것은 모두가 세상 사람이 해괴하다고 여길 일뿐입니다. 그렇지만 이를 10년 동안 행한다면 온 나라의 세금을 감면할 수 있고, 만조백관의 녹봉을 증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초가집과 거적때기를 친 대문이 붉은 다락에 화려한 문으로 바뀌고, 도보로 걷고 물을 건너기 걱정하는 자들이 가볍고 튼튼한 말이 끄는 수레를 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나라의 안녕을 해치던 일이 이제는 나라에 상서로움을 불러들이고, 예전에는 자기를 기만하고 스스로를 피폐케 하던 것이 씻은 듯 얼음 녹듯 풀릴 것입니다.
그렇게 된 다음에 경복궁을 다시 짓고, 경회루를 신축하며, 의정부와 육조를 예전의 규모로 회복하십시오. 뿐만 아니라 나라 안의 사대부와 더불어 치소와 각소 같은 음악을 즐기십시오. 잠시 고생을 하겠지만 영원토록 안락을 누릴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나라 선왕의 법도와 문화를 밝히고, 우리 세자에게 억만년토록 무궁할 터전을 마련해 주십시오. 이것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나기 어려운 것은 성인다운 군주이고, 놓쳐선 안 될 것은 좋은 시절입니다. 현재 천하는 동쪽으로는 일본으로부터, 서쪽으로는 티베트, 남쪽으로는 자바, 북쪽으로는 몽골에 이르기까지 전쟁 먼지가 일지 않은 지 거의 200년입니다. 지난 역사에는 없던 일입니다. 이 천재일우의 기회에 온힘을 다하여 우리의 국력을 닦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에 변고라도 발생할 때 우리도 함께 우환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직책을 맡은 신하가 태평성대를 아름답게 꾸밀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신은 그것을 염려합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천지를 경륜할 위대하고도 놀라운 학문을 소유하시고, 예악을 제정하는 재능을 겸비하셨습니다. 강건한 제왕의 위엄을 떨쳐 발휘하신다면 세우지 못할 공이 무엇이 있겠으며, 구하여 얻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도리어 조회를 하시는 중에 탄식을 토하시고 뜻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 한숨을 쉬시며, 두려워하면서 할까 말까 망설이신 지가 1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현재의 풍속을 따라 나를 다스려 미봉책으로 메꿔 나가면서 조금 평안한 상태에 만족하여 안주하시렵니까? …
실천에 옮긴다면 근일의 상소문이 지당한 말 아닌 것이 없을 테지만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오늘날 조정 뜰을 가득 메운 글월이, 나오면 나올수록 새로운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겉치레가 번드르르한 글에 불과할 것입니다.
신은 오래도록 독서하기를 폐한지라 소견이 꽉 막혀서 다루어야 할 내용을 빠트리고 버둥거리며 답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전하께서 신의 우매한 충성심을 살피시어 하고 싶은 말을 다 마치도록 특별히 하루의 휴가를 내려 주시고 제 글을 받아 쓸 사람 열 명을 대 주시면 삼가 마음 속에 담긴 생각을 모두 쏟아 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의 말이 전하의 위엄을 모독하지 않았는가 염려스럽고 두렵습니다. 신은 죽을 죄를 무릅쓰고 삼가 말씀 올립니다.
여러 조목으로 진술한 내용을 보고서 네 식견과 취향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