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엔비디아 그리고 코즈
- 요즘 이 생각을 자주 한다. 촉발된 계기는 삼성 전자의 쇠퇴와 이를 분석하는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의 진단이었다. 일부는 삼성이 기술 중심에서 재무나 관리 중심으로 변하면서 쇠퇴했다고 주장한다.
- 하지만 나는 이 진단에 회의적이다. 이는 삼성이 쇠퇴한 한 가지 원인일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위기 상황에서 팻 갤싱어를 영입한 인텔조차도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을 보면, 더 깊은 이유가 있는 듯하다.
- 이 대목에서 코즈가 떠올랐다. 코즈는 주류 경제학과는 다른 시각을 가진 노벨상 수상자다. 그의 1937년 논문 '기업의 본질'은 매우 간단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시장"이 거래를 조직하는 최적의 방법이라면, 왜 "위계"라는 체제로 운영되는 기업이 존재하는가?
- 질문은 단순하고 논쟁적일수록 좋다. 코즈의 질문도 그러했다. 이 질문은 '거래비용' 학파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코즈 외에도 올리버 윌리엄슨이라는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를 낳았다. 코즈에 따르면, 시장을 통해 처리할 수 없는 경제 활동들이 있으며, 이 경우에는 시장과 반대되는 조직, 즉 위계 구조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흔히 시장의 대척점에 '국가'를 놓지만, 본질적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명령과 위계에 기반한 기업이다.
- 이 논지를 기업 집단 문제로 확장한 인물이 윌리엄슨이다. 그는 기업이 스스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이 더 나은지, 아니면 시장을 통해 조율하는 것이 나은지를 논했다. 이에 대한 더 깊은 설명은 생략하겠다.
- 이제 삼성 이야기로 돌아가자. 인텔과 삼성은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즉 반도체 공정의 모든 단계를 통합한 형태로 운영되는 회사들이다. 이들이 최근까지 성공했던 것은 아마 반도체 시장의 특성에서 이런 통합 구조가 유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환경이 급변한다면? 예를 들어 AI가 반도체 산업의 핵심 화두로 떠오른다면? 엔비디아와 같은 새로운 강자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등장한다.
- 엔비디아는 IDM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들은 제조하지 않고 설계와 판매만을 담당하며, "(일부의) 설계-생산-테스트-(일부의) 판매"와 같이 가치 사슬 의 많은 단계가 협력 업체, 즉 시장 네트워크라는 계약으로 위임된다. 이 상황에서 IDM 구조의 장점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고, 실제로 그랬다.
- 그렇다면 시장 네트워크를 통해 번성할 수 있는 역량을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삼성이 잃은 것은 정말 기술일까? 나는 "삼성이 기술을 잃었다"거나 "재무적 관점에 사로잡혔다"는 식의 진단은 동어반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결과를 근거로 무능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물론 변화를 읽지 못하고 대비를 못한 점을 비난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회사가 어디 한둘인가.
- 현재와 같이 급변한 반도체 생태계에 (삼성 같이 거대한 회사에게) 빠르게 적응하라는 "미션"은 사실상 "임파서블"하다. 무리수를 두는 것보다는 한 호흡 가다듬고 관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그럴 시간이 주어질지...
- (덧) 흥미로운 점;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삼성은 "갤럭시"로 어느 정도 대응에 성공했다. 애플이야말로 삼성을 압도하는 (집착적인) 통합형 회사다. 통합형으로 거둔 성공을 다른 통합형 회사가 그럴듯하게 복제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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